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웨이 침공 (문단 편집) === 독일 측 배경 ===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던 [[폴란드 침공]]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장기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독일은 이미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보인 소극적인 태도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폴란드 때문에 참전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예상과 달리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을 결의하고 말았다. 이는 장기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는 전략물자 비축량이 부족한 독일로서는 심각한 문제였다. 실제로 폴란드 침공이 끝난 시점에서 독일군은 내부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탄약은 예비분량까지 합쳐서 2주분밖에 안 남았지, 항공기가 쓸 폭탄도 2주분밖에 안 남았지, 전차와 항공전력은 각각 30%와 25%나 상실했지... 게다가 애초부터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바르샤바]]와 비엘룬, 프람폴(Frampol) 등에서 전략적으로 무의미한 파괴행위와 학살에만 치중하면서 물자낭비와 탄약낭비까지 해서 자업자득으로 물자부족사태에 빠진 답없는 상태였다. 이런데도 히틀러는 아직 침공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프랑스를 침공하라고 명령했다. 나치 독일의 입장에서는 다행히 참모들이 뜯어말렸고, 무려 28차례나 공격개시일을 연기시켰다.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영국]]의 해상봉쇄로 심각한 자원부족에 시달린 경험이 있었다. 하물며 1차대전기의 독일 제국은 세계 2위의 해군강국이었으나 나치 독일은 그때보다 훨씬 열악한 해군력을 지닌 1940년 시점에서 영국의 해상봉쇄를 뚫고 전략자원을 해외에서 수입해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인해 소련으로부터 전략자원을 수입할 수 있었으나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은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 첫째는, 중립국인 [[스웨덴]]에서 산출되는 중요 전략자원인 '''[[철(원소)|철]]의 안정적 수급'''이었다. 스웨덴 북부 키루나(Kiruna) 지방에서는 양질의 철광석이 대량으로 산출되고 있었는데, 이 철광석들은 육로로 노르웨이 북부에 있는 [[부동항]]인 [[나르비크]](Narvik) 항구로 옮겨져서 독일로 수출되었다. 스웨덴 영내에도 키루나와 인접한 항구는 있었으나, [[겨울]]이 되면 [[보트니아 만]]이 얼어붙기 때문에 나르비크 항구를 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스웨덴 영내에 있는 룰레오(북위 66도), 우메오(북위 64도)보다 나르비크의 위도가 더 높음(북위 68도)에도 얼지 않는 이유는 [[북대서양 해류|북대서양의 난류]]가 지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중립국]]이었으나 1939년 11월에 영국의 압력을 못이겨 국가상선단을 영국에 제공한 일이 있어, 독일로서는 노르웨이가 연합국에 가담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철광석 수급이 완전히 끊길 우려가 있었다. * 둘째는 영국과의 전쟁을 위한 '''노르웨이 항구의 확보'''였다. 이는 해군사령관 [[에리히 레더]] [[제독]]이 적극 주장한 것으로 영국-노르웨이에 걸쳐 가해지는 영국의 강력한 해상봉쇄선을 노르웨이 점령으로 뒤로 크게 밀어내고, 장악한 노르웨이 기지를 바탕으로 독일 해군의 영국에 대한 적극적인 통상파괴전 및 해상작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알트마르크 나포]] 사건이 일어나면서 더더욱 부각되었다. 결국 3월 초, [[아돌프 히틀러]]는 노르웨이와, 노르웨이 침공의 발판이 될 [[덴마크]]에 대한 침공계획을 승인하면서 독일의 스칸디나비아 침공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침공부대는 '''4월 8일에 출항하여 4월 9일 침공을 개시'''할 예정이었다. 또한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에 이은 또다른 난적인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 노르웨이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 영국을 침공하기 위한 모의고사격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지리적으로도 섬나라였기 때문에 나치 독일 입장에서는 프랑스를 침공하고나서 영국까지 침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바다'''와 '''섬나라'''라는 장애물을 넘어야하기에 노르웨이 침공을 통해서 바다 건너 영국까지 침공하려는 사실상 연습격에 들어간 셈이다. 만약 이마저도 못한다면 영국 침공도 할 수 없기에 노르웨이 침공은 바다를 건너서 침공해야하는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영국까지 침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자 장애물을 넘어야하는 시험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노르웨이는 지리적으로 바다 서남쪽 건너로 영국 [[스코틀랜드]]와도 마주하기에 영국을 겁주고 위협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독일과 육로로 국경을 마주하기 때문에 베네룩스 3국을 먼저 재물로 삼아 침공을 할 수 있겠지만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하는 조건도 따르기에 노르웨이 침공은 히틀러에게 있어서 프랑스는 물론 영국을 점령해서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정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